2.음모론 미스테리

셰익스피어는 정말로 그의 작품을 썼을까? : 셰익스피어 음모론 미스테리

Mr.Lee Mystery 2020. 4.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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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 오빌 워드 오웬, 오른쪽 : 필립 시드니의 저작 '아르카디아'

 

1911년 오빌 워드 오웬은 어두운 비밀을 발견했다.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필립 시드니의 '아르카디아'를 읽으면서 오웬은 텍스트에 숨겨진 복잡한 비밀 코드를 발견했다. 이것을 해독하자 충격적인 폭로가 일어났다.

 

 

프란시스 베이컨 경은 모든 셰익스피어 작품의 진짜 작가였다. 오웬은 1만 피트의 천을 이용하여 암호 바퀴를 만들었다. 이 기계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진짜 천재라는 증거가 들어 있는 '위' 강바닥에 상자가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 이야기는 뉴욕 타임즈에 실렸으나 문학사를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오웬은 강 바닥을 건져 올렸다. 그가 바닥에 다다랐을 때는 진흙 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셰익스피어가 1616년 사망한 이후 그의 작품의 저자에 의문을 제기하며 등장한 수백 개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남자가 스트랫포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났고, 런던에서 배우로 일했고, 죽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학자 오제이토드와 윌리엄 루빈스타인을 포함한 점점 더 커져가는 학문적 협력단은 37편의 희곡, 154개의 소네트 그리고 그의 인정받은 5편의 시가 사실 다른 사람의 작품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4세기 동안 속아온 것일까?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박식하고 광범위하다. 작품들은 왕실, 외국의 귀족, 이국적인 문화 그리고 귀족 스포츠에 대한 친밀한 지식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추정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어휘력을 현재도 엄청난 양인 29,000 단어에 달한다고 한다. 대학교육도 받지 않았고, 학교 출석 기록도 없는 그가 영어에 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코리올라누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그의 작품들은 그 당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기술적인 지식을 보여준다. 예를들어 비극 '코리올라누스'는 인간 순환계를 언급한다. 그렇다면 가장 엘리트 계층에 있는 사람들만이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윌리엄 하비는 다름아닌 프랜시스 베이컨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죽은 후에 처음 출판되었다. 이것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일까?

 

순서대로 : 월트 휘트먼, 오슨 웰즈, 지그문트 프로이트, 찰리 채플린

 

오웬의 의혹에는 어떤 진실이 있었을까? 확실히 이 음모론은 시간만 많은 괴짜들에 의해서만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월트 휘트먼, 오슨 웰즈, 지그문트 프로이트, 찰리 채플린과 같은 문화 거물들은 모두 셰익스피어의 전설이 그가 죽은 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으며 베이컨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베이컨의 최측근 중 한 명인 토비 매튜는 그가 다른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고 쓴 적이 있다. 그가 암시하고 있는 것이 이를 뜻하는 것일까?

 

현대 연극사 기록은 셰익스피어를 배우로만 지칭한다. 심지어 그의 사망 기록조차도 그를 극작가라기보다는 '신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델리아 베이컨

 

비평가 델리아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를 '성실하고 문맹이며 삼류 연극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을 때 무엇인가 알아챘을까? 각각 간신히 읽을 수 있는 필적으로 겨우 6개의 남겨진 서명들로써 우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37편은 고사하고 한 편의 희곡을 쓸 수 있는 재주를 가졌다는 것조차 확신할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서명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근거 없는 속물 근성에 의한 동기가 되었을까? 셰익스피어는 아버지가 공식적인 치안판사 직책을 맡았기 때문에 지방 킹 에드워드 6세 문법 학교에 다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학교는 라틴어, 고전학, 천문학 등 유달리 엄격한 교육을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지식의 폭은 그리 놀랍지 않다.

 

셰익스피어 소유의 글로브 극장

 

그리고 글로브 극장이 있다. 이 행적은 그 당시 주인인 셰익스피어가 스트랫포드의 같은 소년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가 배우로서만 언급된 적이 있다는 주장은 완전히 입증되지는 않았다. 극장 너머에서 그가 엄청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존 데이비스의 1610년 시 '어리석음의 징벌'은 그를 극작가의 또 다른 단어인 '우리의 영국인 테렌스'로 묘사한다. 사후 연극들은 비록 나중에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그들 모두는 셰익스피어의 생전에 셰익스피어의 연극사에서 공연되었다.

 

셰익스피어가 빈틈없는 사업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정 기록은 살아남았다. 그가 사는 곳은 사회적 격차로 유명한 시대였다. 그가 단순히 직업을 가진 배우였다면 실질적인 금전적 기회를 가졌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왼쪽 : 롤랑 엠메리치 감독, 오른쪽 : 그의 영화 'Anonymous'

 

이는 수세기 동안 비평가들과 학자들 모두를 당황하게 했던 질문이다. 2012년 롤랑 엠메리치 감독은 'Anonymous'를 제작하였는데, 이 영화는 '옥스퍼드 백작 에드워드 드 베레'를 셰익스피어의 실질적인 작품에 대한 미스터리의 중심에 있는 남자로 묘사했다.

 

이렇게 많은 가능성이 있는 경쟁자들과 적게나마 남겨진 기록들로 우리는 과연 그 답을 알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아직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윌의 실력은 확고하게 반증할 수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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